가야사. 김해를 가야(伽倻) 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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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신창동 현악기

가야금(伽倻琴)또는 ‘가얏고’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의 하나로써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야금과 관련시켜 볼 수 있는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 조에 가장 먼저 보이고 있습니다.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은 축(筑)과 같고 연주하는 음곡(音曲)도 있다.’ ‘변진의 슬(瑟)’이라 불리운 악기와 가야금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슬(瑟)은 12줄로 된 현악기였습니다. 이것은 형태가 축(筑)과 같은데, 『통전(通典)』에 의하면 ‘축(筑)은 참대로 치는데, 쟁(箏)과 비슷하고, 목이 가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야금은 슬(瑟)·축(筑)·쟁(箏) 등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12줄의 현악기로서 공명관 위에 줄을 세로로 메고 기러기발을 버티어 세웠는데, 머리 부분은 양(羊)의 두 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한치윤이 “진한의 슬(瑟)은 곧 가야금이다.” 라고 한 것과 이규경이 “가야금은 옛날의 슬(瑟)의 이름을 고친 것이다.” 라고 한 견해를 참고해 볼 때 가야금의 기원을 변진의 슬(瑟)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완성되기 이전의 가야금의 형태는 1997년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삼한시대의 현악기가 참고됩니다. 이 악기는 현을 꿰매는 구멍이 뚫린 상부, 소리 울림통 역할을 하는 몸통, 그리고 현을 모아 고정시키는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가야금의 조형이 아닌가 합니다. 가야금은 신라시대 토우(土偶)에서도 자주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국보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長頸壺)의 가야금 연주자 토우는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우장식장경호 토우장식장경호 신라금

『삼국사기』에 의하면 ‘대가야’의 가실왕(嘉悉王)은 중국악기를 참조하여 열두 달의 음률을 본떠 12현금을 만들고, 또 성열현(省熱縣) 출신의 악사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을 짓도록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특히 유교정치이념이 도입된 이후에는 음악 자체가 전제정권의 강화와 호국정신의 고양이라는 목적을 가진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습니다. 우륵이 12곡을 만든 목적 역시 가야 세력의 일체화와 대가야 맹주권의 확인이었습니다. 우륵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기를 가지고 551년(진흥왕 12년) 신라로 망명을 하게됩니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성(國原城)에서 살게 하고 계고(階古), 법지(法知), 만덕(萬德) 세 사람에게 음악을 배우게 했습니다. 우륵은 이들 세 사람에게 각각 가야금과 노래, 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우륵의 12곡은 이들에 의해 다섯 곡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지게되어 185곡이나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야금은 일본에도 전해져 ‘신라금(新羅琴)’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현재 일본의 정창원에는 신라금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가야금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궁정과 민간에서 크게 애용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말 김창조(金昌祖)에 의해 가야금 산조가 창시되었는데, 전통적인 가야금(法琴)보다 빠르고 다양한 산조기교에 적합한 소형의 산조가야금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승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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