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김해를 가야(伽倻) 너를 만난다


신라시대란

신라시대란

김해의 역사에서 신라시대란 가락국이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어 종말을 고하고 고려가 건국되기 전까지입니다. 이른바 통일신라라 불리는 시대의 대부분이지만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기 약 100여 년 전부터 김해지역은 신라의 금관군(金官郡)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금관이란 지명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정복자인 신라가 가락국의 철을 관장하겠다는 의지로 붙였던 이름입니다. 신라 문무왕(文武王)은 680년에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지방의 군(郡)에서 작은 서울(小京)으로 승격한 셈입니다. 경덕왕 16년(757)에 금관소경은 김해소경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김해의 지명은 이 때부터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철(金)과 해상(海)왕국의 전통은 이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이 때 쇠(金)바다(海)의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겁니다.

신라왕실의 외가

문무왕이 김해지역을 작은 서울 - 소경(小京)으로 승격시켰던 데에는 아마도 같은 핏줄이라는 생각이 작용했을 겁니다. 문무왕은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명왕후(文姬)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문명왕후는 김유신과 함께 가락국 제10대 구해(형)왕의 증손으로 가락왕실의 후예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한의 통일을 완수하였던 문무왕의 외가가 김해 가야의 가락국이었습니다. 문무왕은 외가의 본관을 금관소경으로 올리면서 그 시조 수로왕릉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의 명령을 내립니다. 가야시대에는 없었을 수로왕릉의 높다란 봉분은 이 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라시대의 개막

구산동 백운대고분

김해에서 신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유적이 구산동 백운대고분입니다. 일제시대부터 알려진 구산동고분군의 하나로 1997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돌방무덤(橫穴式石室)의 구조가 확인되었고, 금동제장신구, 인화문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가야의 돌덧널무덤(竪穴式石室)은 돌로 네 벽을 먼저 쌓아 올리고 위에서 관을 내린 뒤 돌 뚜껑을 덮고 봉토를 씌우는 구조로 1회의 매장으로 한정됩니다만, 돌방무덤은 한쪽 벽에 출입구를 만들어 추가로 매장할 수 있는 무덤형식입니다. 무덤형식이란 매우 보수적이어서 축조자의 교체 없이는 바뀌기 어렵습니다. 가야의 돌덧널무덤에서 백제·신라의 돌방무덤으로의 변화는 김해지역의 지배층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백운대고분은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532년에 가락국이 신라에 통합된 뒤에 새로 만들어지는 무덤으로 신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유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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